extra_vars3 이사야 55:8-9 하나님의 방식과 우리의 방식 

 

이사야서 55:8-9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방식과 우리의 방식

 

 우리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는 틀린 생각을 하는 영적인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바로 그렇게 된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을 하면서 그들은 선악의 모든 기준을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네들 중심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면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판단을 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판단해주시는 판단대로 

하나님이 이것 좋아 하면 좋은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하나님이 요것은 안 좋아 하면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는 직접 내가 선악을 판단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저주와 사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우리의 판단…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하나님의 방식과 우리의 방식…은 정반대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은 집을 지을 때에나 무엇을 건축할 때에 반드시 밑에서부터 짓습니다. 

바벨탑을 지을 때에도 보면은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려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지을 때에나 방주를 지을 때에는 우리와는 반대로 위에서부터 짓습니다. 

창세기 6:15-16. 

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16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성막을 지을 때에도 먼저 성막 지붕을 먼저 짓고 나서 밑에 들어갈 널판지를 만듭니다.

이와같이 순서가 정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방식과 우리의 방식…

하나님의 생각의 구조와 우리의 생각의 구조는 하늘과 땅입니다. 

 

할아버지와 소년이 말 한 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가신 날 밤, 말이 병이 들어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말의 열을 내려 주려고 밤을 세워가며 물을 먹이면서 애를 썼지만 말은 싸늘하게 죽어 갔습니다.

시내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얘야, 말은 열이 날 때 절대 물을 먹여서는 안된다. 

넌 네 방식대로 말을 치료한거야

말을 치료하려면 네 방식이 아닌  말의 방식이어야 하는 거란다”

소년은 밤을 세워가며 최선을 다하여 말을 돌보았지만 

오히려 말에게 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에 내가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열심히 더 노력하고 애를 쓴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드슨테일러는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일이다”

 우리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애를 써고 뛰고 굴리고 야단법석을 떨고.... 그거는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29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위로부터 오시는 성령이 예루살렘교회에 임하므로 그때부터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이 노력해가지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거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의 인간들이 만든 다른 종교도 다 밑에서부터 올라갑니다.

   

20년 전에 시애틀에서 원불교 교무과장으로 일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당시에 나이가 52살 정도 되는데 포교승으로 최기숙이라고 하는 여자 스님이 한국에서 원광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애틀에 불교를 전도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시애틀에서 어느 한국목사를 만나서  기독교 진리에 대해서  십자가의 진리에 대해서 듣다가 갑자기 성령께서 역사하여서

 무릎을 꿇고 이 분이 눈물을 쪼르르 흘리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이름을 최마리아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를 했습니다. 

그분이 졸업논문으로 쓴것이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

이분만큼 확실하게 쓸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졸업논문을 쉽게 한줄로 얘기를 하는데 

“기독교는 기쁨의 진리”입니다. 

불교는 가도 가도끝이 없는 어려운 철학입니다.” 

52년 믿었지만 어려운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 한순간 나에게 영생이 주어지고 죄 사함받고 나에게 구원이 주어지고 그 기쁨이 지금도 나에게는 넘쳐서 그 기쁨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감격 그 기쁨 예수 믿는 그 순간 주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계속 주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52년 믿은 불교는 한 순간도 나에게 기쁨을 준적이 없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더 어려워지는 것이 불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위로부터 이루어지므로

구원도 위로부터 한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만든 불교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수행은 

아무리 해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반대가 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해야 할 때 

하나님의 방법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을 여호수아에게 일러줍니다. 

먼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서 일곱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번씩 돌고 

마지막 날에는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돌고 나팔 소리를 길게 부를 바로 그 때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여리고성을 향해 일제히 소리를 지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을 점령하고 함락시키게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여리고성을 공격하거나 포위하거나 성에 맞설 다른 성벽 공성탑을 쌓던지 해야 할텐데... 

하나님의 방식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니 내 방식대로 해야 되겠다..’

 

그런데 우직하게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분의 일을 위해서.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실까? 

 돈 많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똑똑한 사람… 

하나님이 찾고 계신 사람은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보이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19-20,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일을 하실 때 당신 마음대로 하시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지켜보고

 그 분이 하라는대로 따라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 생각대로 살지 않고 내가 선악을 판단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우리의 기도가 하나도 하나님께 상달되지를 않고, 맥없이 툇자를 맞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상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은 

그것은  응답을 받게 하는 기도를 드리는데, 가장 중대한 조건, 즉 완전한 순종의 계단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우리에게 나타날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뜻을, 그의 뜻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매사에 예수님 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을 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즉각 즉각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데…

 당연히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기도의 응답은 그 때까지 지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하나님께 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에게 일방적으로 응답을 해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응답을 지체하고 우리가 변화되어서 기꺼이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순종의 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구하고 있는 기도응답도 곧

우리에게 오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제사를 먼저 드려야 하는데 사무엘 제사장이 늦게 오자 

사울이 생각하기에는 적군은 쳐들어오지 병사들은 동요가 되어서 흩어지려고 하지…. 

그래서 엣다 모르겠다 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자기가 직접 제사를 주관해서 드리는 겁니다.  

이를 지켜본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를 하시고 결국은 왕위를 사울에게서부터 빼앗아서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는데는 다 그럴듯한 이유와 변명이 다 있습니다. 

다 합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키신대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다음의 왕인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나님께 물어서 모든 것을 행동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방법이 아니면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죽일려고 쫓아오는 사울왕을 오히려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그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방법이 아니기에 그의 부하들에게 “나는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라”고 하며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죽였으면 그 때부터  고생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바로 왕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당장의 편안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절대순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리켜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는 이 순종이 잘 안됩니다.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방식과 이 세상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방식에 찌들어 있는 우리들 갑자기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는게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틀립니다.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심어 놓은 중심진리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는 목적이 서로 다르고 원리도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는 권세나 탐욕이나 야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성경권—타탁먹자--보복장소섬

세상은 우리더러 성공하라고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순종하라고

세상은 경쟁하라고 하나님나라는 섬기라고

세상은 자기 권리를 지키라고 하나님나라는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세상은 최상의 거래를 위하여 타협하라고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라고

세상은 탁월해지라고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라고

세상은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하나님 나라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세상은 자기를 자랑하라고 하나님 나라는 자기를 부인하라고 

 

세상은 보는 것으로 행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행합니다.

세상은 복수하라고 하나님 나라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세상은 장기목표를 세우라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미래를 보여주시는대로만 살면 된다고

세상은 소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경건한 성품이 기쁨을 준다고 

세상은 섬김을 받으라고 하나님나라는 섬기라고

 

이렇게 사사건건 우리의 사고 방식 그리고 세상의 방식과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틀립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우리의 본성도 하나님의 통치권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가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과 공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짧은 기도문 속에 하나님의 방식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 저것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나라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내 삶에 순종하느냐 그 방법을 깨닫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이렇게 묵상을 하다가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묵상입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들여서 내가 더 부자가 되려고 내가 더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데… 

그것은 묵상의 목적이 아닙니다.

묵상은 어떻게 하면 내가  이해가 안 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게 되느냐…?를 하는 것이 묵상의 목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 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를 통해서든지 성경을 통해서든지 듣든지 그렇게 성경을 보는 비율이 한 10%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예배를 드리며 말씀의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듣는 자는 5% 정도 로 봅니다. 

 

그리고 그 5%깨닫는 사람 중에  몇 % 정도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대로 행동을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실제로 땅 즉 이 세상에서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행해지므로 이루어지는 천국의 삶을 사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 중에 1%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옆에 있는 분들에게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중에서 

“꼭 천국에서 사는 것 같아요! 

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아가요! 너무나도 황홀해요!”라고 

한다면은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라는 책을 쓴 다하라 요네꼬양은 

어머니의 죽음때문에 괴로워서 달려오는 열차에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는데… 

 오른쪽 손의 손가락 세 개만을 남기고 두 다리와 왼쪽팔이 절단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있는 동안 선교사를 지망하는 청년을 만나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서 말씀대로 살아가며 남편과 함께 자기의 삶을 간증하고 있는데 이 여인은

이제는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니까 전에는 사지가 멀쩡해도 행복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말씀대로 깨닫고 순종하니까 사는 것이 황홀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아서 도저히 따라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부르짖고 기도하며 성령으로 충만하면…

  용감하게 담대하게 아슬아슬하게 벼랑끝에서

허공에 한 발자국을 내 딛는 심정으로 눈 질끈 감고 한번도 걸어가보지 못한 곳으로 믿음으로 내 딛는 겁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아직 물은 강을 넘치게 흐르고 있었지만 믿음으로 눈 질끈 감고 법궤를 메고 건넌 것 처럼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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